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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체는 죽어 흐터져도 영혼은 존재한다.
우리 인간은 살아서는 정신(精神)이라 하고 죽어서는 영혼(靈魂)이라 한다.
살아 있을 때는 마음이니, 정신이니, 생각이니 하지만 그 정체는 눈으로 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마음이 없다거나 정신과 사상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니 이 같은 심식(心識)의 작용을 생시(生時)에는 정신, 또는 생령(生靈)이라 하고 죽어서는 영혼(靈魂)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불교에서는 영(靈)을 식(識)이라 하여 오음(五陰) 가운데 식음(識陰)이 있고 6식(六識) 가운데 의식(意識)이 있으며 십이인연(十二因緣) 가운데 세번째인 식(識)이 있다.

사람의 본성(本性), 진여(眞如)는 본래청정(本來淸淨)하고 적멸(寂滅)하여 생멸(生滅)이 없지만 그 본성(本性)이 욕심때문에 흐려져서 청정(淸淨)하지 못한 연고로, 미(迷)한체 활동할 때에 식(識)은 육신의 생명을 따라서 그 이름이 달라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본유(本有)"는 업보본유(業報本有)의 식(識)을 말한 것이요, "사유(死有)"는 곧 사망(死亡)할때에 없어지지 않는 식(識)이요, "중유(中有)"는 육신(肉身)이 죽은 뒤 다시 다른 곳에 태어나지 아니한 사이의 식(識)을 말한 것이니 이것을 중음신(中陰神)이라고 한다.

"생유(生有)"는 다음에 어떤 부모의 모태에 태어날 때를 지적한 것이니, 우리의 영혼이라든가, 식심(識心)이라든가, 영식 (靈識)이란 것은 육체의 생사(生死)를 따라서 그 이름이 달라질지언정, 그 영식 (鎭識)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는 흐터져 없어져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전생설(轉生說)과 육도윤회설(六道輪廻說)이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시대에 있어서는 시,공(時,空)을 주름잡는 고도의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과학일변도적 지구 문명을 이끌어 가는 서구(西歐)에서는 심령(心靈)마저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심령 (心靈)과학혐회니, 심령연구회니 하는 국제기구까지 만들어 놓고 "Spiritualism"(신령주의(神靈主義) 이라)하여 연구모임 둥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은 현실계(現實界)와 영계(靈界)와의 이중(二重)속에서 생활(生活)하고 있다라고 한다. 그리고 생명(生命)의 본질(本質)을 염현(念絃)이라 하여 우리의 육체는 염현(念絃)이 탄주(彈奏)하는 곡보(曲講)라 하고, 현(鉉) 의 결(決)이 집합된 것이 생명체인 육신(肉身)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 파장(波長)의 생명을 본체(本體), 영체(靈體), 유체(幽體), 에탤체로 분류하였다. 이에대한 설명은 앞으로 계속 하기로 하고, 우선 불교적 입장에서 보는 영혼(靈魂)의 존재 유무를 선사(先師)님들의 말씀을 통하여 기술코저 한다.

정영(精靈)은 다시 환생하고 …

이 이야기는 전생(轉生)설로써 중국 명(明)나라때 대융교학자(大關敎學者)인 왕수인(王守仁)이란 분의 전생(轉生)을 실증(實證)한 예로써, 그의 호는 양명(陽明) 이다.
이 왕양명(王陽明)이라는 이는 중국(中固)의 유명한 철학자(哲字者)이다.
그런데 왕양명(王陽明)은 일찌기 절강성(浙江省) 여요(餘挑)땅의 사람으로 명(明)나라 현종 성화(成化) 8년(八年)에 출생하여 55세때에 사망한 학자이다.
왕양명을 그 어머니가 포태할 때 "수천명의 천녀(天女)가 채색이 영롱한 구름을 타고 집으로 내려오더니, 그 가운데 한 처녀가 옥동자를 하나 안고와서 고함을 치며 이 아이를 받으라"는 꿈을 꾸었으니 이 태몽은 왕양명의 조모의 꿈이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왕양명은 중국 유학계(橋學界)의 일때 효성(曉星)이었으나, 원나라때부터 명나라의 중엽까지는 주자학이 성행하여 "사서오경 (四書五經)"의 주석에만 끌리었고 송유(宋儒)의 찌꺼기를 맛보면서 공연히 철리(哲理) 만을 토론하고 실천, 실행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많았다. 그런데 명나라 중엽에 와서 왕양명이 나타나서 양지양능(良知良能)과,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실천철학을 주장하여 실행케 하였음으로 유학계에 일대변사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왕양명은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으니 그는 달마(達薦)선사의 돈오선풍(賴梧禪風)이 이미 전세(前世)부터 그의 마음을 밝혔던 선승(禪僧)이었다고도 할수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인연설화(因緣說話)가 전해지고 있다. 일찌기 철강성 금산사(金山寺)에 금산대사(金山大師)라는 한스님이 계셨는데 그는 한 마음으로 선정(禪定) 공부를 하더니 생사와 해탈을 자유자재로 할수 있는 도덕을 갖추게 되었던 대사였다.

그가 어느날 점심 공양을 하고 목욕갱의(沐浴更衣) 한 뒤에, 가사장삼을 정재해 입고 어떤 조용한 법당으로 들어 가면서 안으로 문을 꼭 잠그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이 법당문을 절대로 열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들어가서는 다시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 뒤에 스님네들이 궁금증이 나서 법당문을 박차고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그가 성승(聖僧)으로 부탁한 바가있어 감히 열어볼 생각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법당문을 열지 못한체 50년이나 되었는데, 하루는 왕양명이 제자 백여명을 데리고 금산사(金山寺)로 봄놀이 소풍을 왔다가 "절"도량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어딘지 모르게 낮익어서 전에 살던 집같이만 느꼈다. 그런데 여러 법당에 참배를 마치고 한 법당에 이르니 문이 잠겨 있었다. 그 절 스님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하였더니 그 문은 절대로 열지 못한다고 한다.

왕양명이 이르되「왜 열수가 없는가?」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옛날 도승이 들어가시면서 "이 문을 절대로 열지 말라"는 분부가 계셔서 그렇습니다」.
왕양명은 이말을 듣고 호기심이 부쩍나서 밖에 달린 문고리를 잡고 힘차게 당겼더니 부사의(不思議)하게도 문이 곧 열리었다. 들어가서 본즉 한 스님이 가사와 장삼을 입은채로 가만히 입정(入定)하고 앉아계신데, 시체가 썩지 않고 "미이라"가 되어 굳어 있었다.
그런데 왕양명은 벽상에 써 붙인 글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법당문이 열렸다는 말을 듣고 대중스님네가 대종(大鍾)을 치면서 몰려들어 돌아가신 선사육신(輝師肉身)에게 예배를 하고 왕양명의 제자도 모여들어서 절을 하였다. 그런데 왕양명을 보고 대중스님들이 물었다.
「선생이 무슨 뜻으로 이 법당문을 열었습니까?」
「이 벽상에 써 붙인 글을 보시오 내가 잠근 문이니 내가 열수 밖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대중이 그 글을 보니 오십년 전의 왕수인이여(五十年前王守仁).
문을 여는 사람이 문을 닫은 사람일세 (開門人是閒門人) 정령이 바뀌어 다시 돌아오니(精靈刺洛置歸復).
비로소 선문에 무너지지 않는 불사신(靈)이 있음을 믿겠네(始信輝門不壞身).
이러한 글귀였다. 그래서 대중은 그가 과거 금산대사(金山大師)의 후신임을 알고 다시금 예배하고 그제서야 유가(儒家)에서 유명한 왕양명 선생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진기한 사실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었다.

    ◀ 50년간 모발이 50cm 길어진 부처님 모습

전생의 업연(業然)은 환생해도 남아있다.

한 예로서 이조시대의 말엽에 김성근(金聲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전라북도에 있는 원등암(遠燈魔) 해봉스님의 사후(死後)에 다시 인간세에 태어난 후신(後身)이다. 김성근이란 분은 이조말 고종(임금시대에 이름이 높았던 재상이었 는데 판서 김송간(金松間)의 둘째 아들이었다.

김송간이 하루는 큰 바위가 집 가운데로 날아오는 꿈을 꾸고 그 부인이 태기가 있어 그후 십일개월만에 낳았는데 그가 곧 김성근이었다.
그후 김성근은 성장하여 해사(海士)라는 호로써 행세하였음으로 세상사람들이 해사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는 불교에 대한 신심이 강하여 불경을 많이읽고 조석으로 염불 외우기를 그치지 아니 하였다. 그리하여 생시(生時)에 소변을 보다가 사리가 칠과(舍利七果)가 나왔다고 할 만큼 도력 또한 높았다. 그는 일찍이 출세하여 전라도 감사를 지냈고 한성판윤과 법무대신과 문부대신 등 많은 벼슬을 하였다.

해사대감은 서울 종로 봉익동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봉익동 대각사에 주석 하시던 독립 삼십삼인이기도 한 백용성 큰 스님과도 친교가 두터운 분이며 불교 문답도 많이 하셨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해사 선생께서도 그 전생에는 수도승(修道增)이었다는 진기한 일화가 있다.
전라북도 완주(현재는 전주)군 소양면에 자리잡은 원등암(遠燈魔)에는 십육라한(十六羅漢)을 모신 나한전(羅漢嚴)후편에 석굴이 하나 있는데 그 석굴안에 석함(石函) 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석함 뚜껑을 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언(傳言)으로 이 석함은 언제든지 전라감사로 온 사람만이 열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
그리하여 전라감사로 내려오면 부임한 감사들은 한번쯤 원등암에 들려 그 석함 뚜껑을 열어 보았으나 아무도 열지를 못했다. 그런데 김성근 사또가 전라감사로 부임하여 이 말을 듣고 호기심도 나고하여 원등암에 행차하였던 것이다.
그 절 스님으로 부터 안내를 받아 나한전 뒤 석굴을 찾아가서 안내한 스님에게 먼저 뚜껑을 열어보라고 하매 그 스님이 석함 뚜껑을 열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열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성근 감사가 손수 석함 뚜껑을 열었더니 쉽게 열리었다.
그 속에는 불경 몇권이 있고 서한봉투같은 몇편의 글이 적혀있었다.

「원암산 머리 한바퀴 달의 그림자가 한성에 떨어져서 제상몸이 되었으니 갑오년 전에 해봉이란 승(僧)이 갑오년 뒤에는 김성근 일세」
遠岩山上一輪月 影洛漢成作宰身)
甲午年前海峯層 甲年以後金聲根)
「나한의 신령을 세상에서 이르는 바인데 어찌하여 불경을 굴밖에 두었는고
내가 경전을 가려옮겨 굴안에 모셨으니 이런 인연으로 다시 환생할 것일세.」
羅漢神靈世所? 何事佛經在窟外 還生」
我移經典安?內 以是因緣再

도광 14년 갑오 5월 15일에 해동사문 해봉성찬은 향을 사르고 삼가 청량산 원등암 16굴 가운데 묻어 두노라」
「道光十四年 甲午五月十五日 海東沙門海峯聲餐. ?香?理於 淸凉山遠燈庵十六窟中」 이 글은 해사 김성근의 전신(前身)인 행봉당 성찬대사가 이 원등암에 계실때에 십육나한전에 들어가 보니 유서(關書)와 불경(佛經)이 뒤섞여 굴 밖에 있는 것을 불경만을 가려서 나한전 법당안에 옮겨 모셔 놓은 인연으로 죽어서 재환생하기를 기원하고 써 놓은 글임을 한눈에 알수 있다. 해사 김성근은 이것을 보고 자기가 전생에 스님이었던 것을 확인하고 원등암에 봉양 답(畓)을 사서 시주하였으며 자기도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어서 서울 봉익동 대각사 근처에 살면서 백용성 큰스님의 참선 지도를 받았다는 사실이 용성어록(龍城語銀)에 수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봐도 우리의 영혼은 존재 한다고 하겠다.

2. 영식의 윤회
영혼은 과연 존재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지난 수천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논란과 시비를 거듭해 왔지만, 아직도 확실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어떤 과학자나 철학자나 종교가는 영혼이 꼭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학자들은 영혼 따위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싸움이 수천년 동안 계속 되어 내려온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대승이나 소승이나 어느 경론이나 할것 없이, 팔만대장경에 부처님께서는 한결같이 생사윤회를 말씀하셨다. 곧 사람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살아서 지은 업(嶪)에 따라 몸을 바꾸어 가며, 윤회를 한다는 것이다.
이 윤회는 불교의 핵심이 되는 진리며 원리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윤회를 하는 실체를 말 할 때 그것을 영혼 이라고 이름하지 않고 제8아라야식(第八Alaya識)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나눌때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하는 이것은 제6의식(第六意識)이라 하고, 그 안의 잠재의식은 제7말나식(第七末那識)이라 하고, 무의식 상태의 마음은 제8아라야식이라고 한다.
사람이 호흡이 끊어치고 혈맥이 끊어지고 목숨이 끊어져 버리면 의식은 완전히 없어지고 오로지 제8아라야식만이 남는 것이다.

이것온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무몰식(無沒鐵) 곧 죽지 않는 식. 없어지지 않는 식이라고 한다. 또한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과거, 현재 할것 없이 모든 기억을 마치 곳간에 물건을 간수해 놓듯 전부 기억해 두고 있다가 어떤 기회만 되면 녹음기에서 녹음이 재생되돗 기억이 전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말할때는 무몰식(無沒識)이라 하고,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뜻에서 말할 때는 장식(藏識)이라 한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미래겁이 다 하도록 윤회를 하는 동시에 무엇이든 한번 스쳐간 것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근대 불교 학자들은 제8아라야식의 존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알아 보자.
대승 불교에 대해 이론을 가장 많이 발달시킨 일본에서도 가장 권위있는 사람이 우정백수(宇井伯壽)인데 그는 아라야식을 도저히 증거를 잡을수 없으므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하여 영혼 자체를 설명할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윤회를 설명할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윤회는 부처님께서 교화를 위해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지 실제로 윤회가 있는것은 아니다. 윤회가 있고 인과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두려워서라도 마음 가짐과 몸 가짐을 착하게 하려고 힘쓸것이므로 교육적인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상당히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이지만 그런 주장도 과학의 발달 앞에서는 꺾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과학이 물질적인 데에서 뿐만이 아니라 정신과학 분야에서도 크게 발전을 이룸에 따라 영혼이었다는 것이 윤회가 있다는 것이 또한 인과가 확실하다는 것이 점차로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생사의 윤희를 벗어나 해탈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해탈의 내용을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확실한 판단이 서야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데에서 또 신앙 생활을 하는 대에서나 불교를 포교하는 데에서 또는 수행하는 데에서 꼭 갖추어야 할 흔들림 없는 근본적인 토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만 바른 행동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불교에서 말 하는 윤회는 세계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그 궁금중과 신비가 차차 벗겨지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에 대해 지금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다.
   윤회의 실증
동서양을 박론하고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경우는 심심치 않은 화제를 남겼다. 죽은자의 영혼이 경험한 죽음의 실체를 사례를 들어 보고저 한다.

미국에 레이몬드 무디(RaymondMody)라는 철학자가 있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배울 때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교수는 무디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나는 수년 전에 두번이나 죽었다가 깨어난 경험이 었다. 내가 죽은 뒤에 의사가 와서 사망을 확인하고 장사를 치를 준비를 하는 도중에 깨어난 것인데, 깨어나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죽어 있는 동안이 깜깜한 것이 아니었다. 내 영혼이 죽어 있는 육체를 빠져나와 그것을 바라보고 또 여러가지 활동을 한 것을 기억한다."
그 정신과 교수는 죽었다가 깨어나는 순간까지의 자기가 경험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는데, 듣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너무나 허황된 꿈 이야기나 거짓말 같아서 믿을 수가 없었다.

무디는 그때에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웃고 말았지만, 뒤에 자신이 철학교수가 되어 강의를 하고 있을때 한 학생이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서부터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 학생은 무디 교수에게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삶과 죽음의 문제이므로 영생(永生)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며칠 전에 그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가 깨어났다고 하면서 그때 할머니가 경험한 것을 들은 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는 무디 교수가 학생 시절에 앞의 정신과 교수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똑같았다. 무디 교수는 이러한 경험담이 단순히 웃어넘기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새롭게 의학을 공부하여 환자들을 상대로 이런 경험담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해 뒤에 무디 교수는 150명의 사례를 수집하여 그것을 1975년에 책으로 출판할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례를 보면 사람들은 거의 모두 다음과 같은 공통되는 경험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3. 육신의 옷을 벗었다가 다시 입은 사례
"처음 죽었을 때는 캄캄한 어떤 터널같은 곳을 빠져 나간다, 그곳을 빠져 나오면 자신의 신체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이상하다. 내가 왜 이렇게 누워 있을까? 내가 죽었는가?'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아주 밝은 광명이 나타난다. 그 광명 속에서 자기가 지나간 한평생에 걸쳐 겪은 모든 일들이 잠깐동안에 나타난다. 그 뒤에 자기가 아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서로 위로도 하고 소식도 묻고 이야기도 나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영혼은 이방 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의사들이 자기를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든지 가족들이 장사지낼 의논을 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다른 방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모두 볼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눈 앞에 보이는 그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을 할 수 가 없다."

죽었다가 다시 꺠어난 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이미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만났다는 사실은 증명할 수가 없지만, 죽은 뒤에 그의 가족들이 한 이야기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 들었으니 유력한 증거가 된다.
이미 의사에 의해 죽었다고 판정되면 그 육신은 한갖 물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다. 더구나 시신은 머리 끝까지 흰 천으로 덮어 놓았으니 설령 거짓으로 죽었다고 하여도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죽었다 되살아난 사람은 자기가 죽어 있는 동안에 가족들이 한 이야기와 그들이 어디에 있었으며, 무슨 행동을 했는지 상세하게 이야기하는데 실지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결국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사람이 죽고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는 죽었더도 무엇인가 활동하는 활동체가 있어서 보고 듣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죽었다가 꺠어났으나 그 과정을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주 깜깜하여 아무 기억이 없다고도 한다.

"무디"교수는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사례를 수집하여 책으로 엮었다. 그 책이 처음 출판되자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래서 각 나라말로 번역 출판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잠깐 보고 온 사후의 세계」또는「죽음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었다.
"레이몬드 무디"교수의 연구가 세상에 알려지게되자 그동안 영혼이나 죽음의 세계에 대해 연구를 해오면서도 인정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결과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여 여러 사람들이 새롭게 조사에 착수하였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근사경험(近死經廳)이라고 하고, 또 영어로는 약어를 써서 "엔디이 N.D.E(Near Dead Experience)라고 하며, 이에 대한 연구를 근사연구(近死冊究)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연구 결과 근사경험에 고나한 사례는 수천건이 수집되었는데, 그런 학자들 중에 가장 이름난 사람이 미국의 시카고대학에 있는 "퀴불러로스" (E.Kubler Ross)교수이다. 이 여자교수는 "무디"교수의 발표 이전에 이미 많은 자료를 수집해 놓고 있었다. "무디"교수가 자신이 출판하려는 원고를 가지고 와서 그 여자에게 출판을 상의한 적도 있었다. "퀴불러 로스"여서는 그 원고가 자신이 수집한 자료와 같고 또 결론도 동일하여 무디 교수의 책에 서문만 써 주고 자신의 책은 출판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디"교수는 1977년 두번째 책인 사후생(死後生)에 대한 회고(Reflections on Life after Life)를 출판하여 좀더 자세하게 근사경험에 대해 발표했다. 여기에는 그는 죽음 뒤에도 삶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런 연구에 대해서 영혼이나 정신을 유물론적으로 보는 소련의 학자들은 이의를 제기하였다.
"사람의 신체 중에서 뇌세포는 맨 나중에 소멸하므로 아직 죽지 않은 뇌세포에서 발생하는 일종의환상일 뿐이지 죽은 뒤에 실제로 어떤 활동체가 있어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학자들에게 공감을 주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시간의 문제가 있다. 소생기억이 1, 2 분 동안의 사망에 불과한 것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한두 시간이나, 길면 이틀이나 사흘씩 죽었다가 깨어나는 경우에는 그런 주장이 성립 될수 없다.
왜냐하면 육체가 죽은 뒤에도 뇌세포만이 몇시간 동안 또는 며칠 동안 살아 있다는 것은 결코 있을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근사경험이라고 하는 소생기억에 대한 반대 의견들은 현재까지로서는 이렇다 할 만한 뚜렷한 자료나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사후에 영혼이 었다는 주장에 관한 오래되고 유명한 기록이 "플라톤"의 「공화국」에 있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어느 군인이 전사하였다.
여러 날이 지난 뒤에 그 시체를 고향으로 옮겨서 장사를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시체를 화장하려고 장작더미에 올려놓는 바로, 그 순간에 그 군인이 되살아났다. 그는 깨어난 뒤에 자신이 죽어 있는 동안에 활동한 여러가지를 이야기하였다.
이런 오랜 이야기도 "무디"교수의 조사 사례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렇듯 죽었다 깨어난 사람들에 의해 영혼이 있음을 확인하였고, 유령이라 불리우는 영혼의 실체를 확인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심령과학자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4. 영혼을 사진으로 찍는다.
영혼(靈塊)의 실체(實體)를 파악하려는 온 세계의 석학들은 심령과학협회를 만들었고 그들이 연구경험한 이론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l848년 3월 31일 미국의 뉴욕주에 있는 "하인즈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마을에 독일계 미국사람인 "폭스"라는 사람이 이 마을에 이사를 오게 되었다. 폭스씨가 이사온지 며칠이 지난 어느날, 누군가 밖에서 현관 문을 두드렸다. 그때 폭스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가족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그냥 들어오라고 말을 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중단했던 가족과 이야기를 진행하려 했더니 또 문을 노크해 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가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큰 소리로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문쪽 밖에서 조용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기는 사람이 아니고 혼령이라고 말하고, 이름은 "로스"이고 이 집에서 죽었는데 자기 시신이 지하실에 묻혀 있으니 다른 묘지에 장례를 치루워 달라는 부탁을 호소하노라고 하였다.
폭스의 가족들은 무섭고 놀랬으나 경찰에 연락하여 지하실을 파 보았더니 정말 시신이 나왔다.
그러나 폭스가 이사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하실에 시신이 묻혀 있음을 알았다는 것에 경찰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경찰은 폭스를 연행하여 구치소에 가두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영혼이 나타나서 "나를 장례까지 치러 주었는데 이런 옥살이 고생을 시켜 미안하다는 인사말을 하고, 자기를 죽인 범인은 지금 앞 집에 살고 있는 "죠지 백"이라고 일러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폭스는 경찰에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은 죠지 백을 문초한 결과 진짜 살인범이라는 것을 밝혀 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이야기는 삽시간에 미국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고 영혼의 존재는 실재한다고 믿게 되어, 인간과의 접촉의 일도 영혼은 하고 있음을 확신시켜 주게 되었다.
그래서 최초로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는 1851년 심령학회가 조직 되었으며 그로부터 1세기 후에 "미국 로체스터"에서 세계의 심령학자들이 모여 국제회합을 갖고 1972년 12월경 "하인즈 빌"사건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울 것을 결의하고 뉴욕 73번가에 8미터 높이의 기념비를 세웠으며,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조사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게 되었다.
또하나 미국 트루먼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일로 "네덜란드"의 "유리아나" 여왕이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여왕을 백악관 귀빈실에서 묵게하였는데 한 밤중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자기의 시녀인줄 알고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이 우뚝 서 있는 것이었다.
여왕은 미국에 오기전에도 백악관에 영혼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하여 잔뜩 겁을 먹고 있던차 그 장면을 보고서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옆방에서 묶고 있던 비서들이 비명 소리를 듣고 뛰어 나와 여왕을 부추키는데 그때까지도 "링컨"대통령의 혼령은 그 자리에 서서 지켜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있던 비서들도 그의 영혼을 보게 되어, 여왕의 착각에 의한 환상이 아니라 사실로써 확인된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트루먼 대통령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역시 여러번 링컨 대통령의 혼령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사건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혼 사진을 찍기로 하고 기회를 포착하여 링컨 대통령의 영혼사진을 찍는데 성공하여 신문지상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이와같이 영혼의 존재를 뚜렷하게 증명하게 되고, 실제 영혼올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합되어 영혼연구소로 집결되고 연구소는 이들의 몇가지 공통된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징
1. 영혼은 모습을 나타낸다.
2. 영혼은 말을 한다.
3. 영혼은 사람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개같은 짐승들도 본다.
4. 영혼이 물체를 이동시킨다. 즉 문을 열기도 하고 방안의 물건들이 자리를 옮겨지기도 한다.
5. 영혼은 사진에도 찍힌다.

이와 같은 공통된 특징이 있음을 학자들은 말하고 있으며 특히 사진으로 찍어서 영혼의 실체를 증명하는 데는 이를 부정하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긍정적 확신을 갖게 하였다.
영혼사진을 처음 찍은 사람은 186l년경 풍경사진 전문 작가로써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멈러"(Mumler)이다. "멈러"는 어느날 큰 나무가 서 있는 풍경사진을 찍고 현상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나무 밑에 아무도 없는 서정적인 사진을 찍었는데 현상 결과는 사람이 나무 밑에 앉아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래서 멈러는 다시 그 장소에 가서 사진을 또 찍었다. 분명 아무도 나무 밑에 없는 상태에서다. 그런데 현상결과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여러번 반복 촬영을 해 보았으나 처음과 똑같은 결과였다. 그래서 멈러작가는 그 사진을 인화해 가지고 나무가 서있는 인근 주민들에게 보이면서 사진에 나타난 인물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 사진에 나타난 사람은 그곳 주민으로써 5년전에 죽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얻고, 그 영혼이 사진에 찍혔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곳 주민 몇사람을 대동하여 함께 나무 밑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시킨 후 사진을 찍었다.
그리하여 현상작업도 그 사람들이 입회한 자리에서 행하여 사진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도 죽은 그 주인의 모습이 찍혔었다. 이로써 세상에서 처음으로 영혼이 사진에 잡혔음이 그로 하여금 유명한 영혼사진 작가로써의 대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런 내용들이 세상에 알려지자 "친달"이라는 한 할머니가 와서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멈러는 촬영을 끝내고 현상을 해보니 부인의 어깨에 양손을 얹고 서있는 링컨 대통령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 부인에게 물었더니 자신이 링컨 대통령의 미망인이라고 하였다. 이 사진을 찍은 후 그는 더욱 유명한 영혼사진 작가로써 유명해져서 많은 돈을 벌었다.
멈러가 유명해 지자 연방정부 당국에서는 그에 대한 사실 조사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일반인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헛소문으로 사기 사진사는 상식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법정 시비로 번지고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과학자 종교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심리하였든 것이다.
결국 멈러는 처음 풍경사진 장소로 조사단을 데리고 가서 촬영을 하여 엄청한 입회하에 현상인화한 사진을 대법원에 제출하고 무혐의의 확정 판결을 받아 무죄된 사실이 1869년 4월 22일자 "뉴욕 타임지"에 보도 되어 영혼사진의 실체가 온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미국의 멈러사건 이후 영혼 사진을 찍는데 성공한 사람은 많았다. 그 중 한사람인 영국의 "허드슨" (William Henry Hudson)이다. 그당시 웰레스(A. Wallace (1823~1913))라는 유명한 박물학자가 있었는데 진화론을 주장한 사람이었으며, "허드슨"의 영혼사진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사진을 찍어 보았다. 그랬더니 자신의 사진에 죽은 어머니의 모습이 함께 찍혀 나오는 것이었다. "웰레?quot;는 그 사진을 보고 영혼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정식으로 학계에 그 사진을 공개하고 보고서까지 제출 했다고 한다.
웰레스와 같은 대 과학자가 영혼의 실체를 인정하고, 영혼 사진에 대한 공개등으로 영혼의 존재를 많은 사랍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로 영혼 사진을 찍으면 거기에 나오는 영혼이 어느 때, 어느 곳의 사람인지 잘 알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영국의 "호우프" (Hope - 1863~1933)라는 사람은 신분이 확인된 영혼사진을 무려 3,000여장이나 촬영하는데 성공했다는 기록이었다.
또 영국의 "크룩스" (Sir William Crookes-1832~1919)도 대 철학자이며 과학자로써 영혼사진을 찍어보았다. 그랬더니 자신의 죽은 부인이 자신의 뒤편에 함께 찍혀 나왔다. 그후 "크룩스"도 영혼사진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영혼사진을 직접 찍고, 또 이름난 과학자나 저명 인사들이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그리고 스스로 학계에 보고하고 증언함으로써, 영혼이 존재 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영혼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문제를 제기해 본다. 영혼사진을 찍을 수가 있다면 곧 영혼은 정신체인데 산사람의 정신작용도 카메라에 나타나야 할것이다.
미국의 "세리우스"(Ted Serios)라는 사람이 이에 관하여 열 두해에 걸쳐 연구하여 마침내 성공하였다. 카메라를 준비해 두고 그 앞에서 자동차를 생각하고 있으면 자동차가 사진에 나타나고 빌딩을 생각하면 빌딩이 찍힌다. 머리속에서 생각하는 대로 모두 사진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생각사진(念寫)이라는 것으로 "세리우스"는 이런 사진을 80장쯤 찍었다.
그때에 "아이젠버드" (Eisenbird)라는 교수가 이 사람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3년 동안 연구하였다. 속임수가 있는가 하여 이리 연구하고 저리 연구하고 또 이렇게 실험해 보고 저렇게 실험해 보았으나 결국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과연 생각하는데로 사진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이젠버드 교수는 「세리우스의 세계」라는 책을 출판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제, 생각사진까지 입증되고 보니,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사진으로 찍을 수가 있느냐는 의문은 더이상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영혼이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사진의 오른쪽 위에 나타난 영의 모습

우리나라에도 옛날 이야기에 보면 영혼이 있음을 시사하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온다. 이를테면 어떤 선비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게 되어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함께 살던 어느날, 그 아가씨가 친정에 간다고 해서 따라가 보면 집에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들어가서 물어보면 그 아가씨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 그 날이 바로 그 여자의 제삿날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산사람이 영혼과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와 같은 사례가 옛날 이야기로만 전해오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영혼을 기술적인 방법으로 산사람처럼 나타나게 해서 같이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렇께 하는 것을 "영혼의 물질화"라고 하는데, 앞에서 영혼 사진을 입증했던 크룩스라는 학자가 바로 이 작업에 성공했다.
그는 케디 킹이라는 여자의 영혼을 물질화시켜 여섯달 동안 함께 생활하였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 따위가 보통사람과 똑같았다. 아이들에게 글도 가르쳐 주고, 이야기도 하고, 손님이 오면 접대도 하는 등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었다면 먹지 않는다는 것과, 몸무게를 달아보아도 무게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여자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싸가지고 자기 집에 가서 펴보았더니 머리카락이 온데 간데 없다고 한다. 또 바로 옆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과학자인 크룩스가 영혼을 물질화시켜서 여섯달 동안이나 함께 지낸다고 하자 그 소문이 영국 나라안에 모두 퍼졌다.
그리하여 그때의 유명한 사람들 가운데 꽤 많은 사람이 그 케디 킹이라는 영혼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때 찍은 사진이 수천장이나 되는데 잡지나 사진책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근사(近死) 경험이니 영혼사진이니 하는 것들에 대하여 소개했다.
그것은 단순한 흥미거리로서 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일체만법이 불생불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한 이야기들이다. 물질적인 현상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불생불멸한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된 것이다.

그런데 영혼이 불생불멸이라면 역사이래로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이 거듭되어 왔는데 그 많은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 우주에 가득차 있는지, 사는 나라가 있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근본적으로 윤회(輪廻)를 주장한다. 그러나 한때는 학자들이 윤회설은 인간들에게 권선징악(勸善徵惡)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불생불멸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자 이러한 주장은 사라지게 되었다.
실지로 전생과 윤회가 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과학적인 통계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써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또 한번 귀명(歸命)하지 않을 수 없다.

5. 육도윤회의 여정에 오른 영혼
불교에서는 육도(六道) 윤희(輪廻)를 이야기한다. 즉 육도란 지옥(地歡), 아귀(鐵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의 여섯 세계를 의미한다.
사람은 자신이 지은 업(業)에 의해 6도(六道)를 윤회한다.
인간이 되기도 하고, 개나, 소, 같은 축생이 되기도 하니, 이 윤회는 바로 자신이 행한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앞날의 일이 전생에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決定論)이나 숙명론(宿命論)과는 다르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에게 나쁜 일이 닥치면 자기의 업이나 팔자탓으로 돌려버리고 만다.
그리고 자기는 아무리 잘해도 업이 두렵고 팔자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비록 현재에 받는 과보(果報)는 지난날의 업에 의해 그렇게 되었을지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선업(善嶪)을 닦는 것은 지금의 자기 자신의 의지이다. 물 속에 있는 무거운 돌을 입으로만 떠오르라고 외친다면 떠오르지 않는다. 그 돌을 떠오르게 하려면 스스로 힘을 쓰든지 기계의 힘을 빌리든지 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기우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업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 차위에 나타난 여성의 영체


이러한 윤회사상은 부처님께서 최초로 하신 말씀은 아니다. 부처님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것이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믿는 것이다. 결국 이 윤회사상에 의하면 영혼은 따로 거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생을 거듭하면서 몸을 바꾸어 나타나는 것이다. 티뱃 지방에 전하는 경전 중에 바르도 토에돌(Bardo Thodol) 곧 「사자의서」라는 책이 있다.
이것은 죽은 사람「死者」과 죽음에 대한 안내서로서, 죽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영혼은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세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부분(치카이 바르도)은 죽음의 순간을 묘사하고 있고, 둘째 부분(초이니드 바르도)은 죽음 직후에 잇달아 일어나는 꿈과 같은 상태를 설명하며, 세째 부분(시드파 바르도)은 출생 충동과 출생 이전의 과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죽음에서 출생에 이르기까지는 보통 49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에 사자(死者)의 영혼이 나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부처님의 말씀인 대승경전을 읽어 주거나, 또는 「사자의서」에 나오는 글을 읽어주면 좋은 곳으로 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49재를 지내는 것은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사자의서」에 나오는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근래의 연구인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의 증언, 곧 근사경험과 너무 비슷하다. 「사자의서」에 보면 숨이 끊어질 때에 밝은 광명을 경험할 것이라 하면서 그것은 마음의 본래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사자(死者)의 영혼은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이 그들을 부르는 소리는 사람들이 듣지 못하므로 마침내 사자는 실망하고서 사라져간다고 한다.
이 「사자의서」는 티뱃의 승려들 사이에서 비전(秘傳)으로 내려오다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00년대의 일이니만치 어느 누가 이 책을 미리 보고 마치 죽음의 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꾸며서 말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죽음의 세계에 대한 경험은 똑같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사람이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영혼을 중음신(中陰神) 곧 바르도(Bardo)라고 한다.
이 중음신은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두려워하는 수가 많다고 한다. 이 때 선업 (善嶪)이 강하면 곧 안정을 되찾고 바로 다음 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거나 가족친지의 울음소리가 너무 강하게 들리면, 그만 세상에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 올바른 길을 찾아가지 못하고 허공을 헤매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좋은 곳으로 왕생하라고 염불이나 경을 독송해 주는 것이다.
이 중음신들은 자기의 업력(業力)에 따라 다음생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데 7일만에 태어나는 경우도 있고 49일을 채우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영혼이 있다는 것과 그 영혼이 다음생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이것이 종교적인 상상의 세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품어왔다.
윤회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자기의 전생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
윤회는 반듯이 있다. 여기에 그 실예를 몇가지 들어 보면 신생 어린이의 전생기억, 또는 남의 죽은 송장을 의지하여 몸을 바꾸는 차시환생(借屍還生), 혹은 정신의 전생회귀(前生回歸) 등 여러가지 증거들을 예를 들어 설명코저 한다.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는 대개 두서너살 되는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데 이들은 말을 배우게 되면서 전생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곧 "나는 전쟁에 어느 곳에 살던 누구인데 이러이러한 생활을 했다"하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지금부터 27년전 터어키 남부의 "아나다라"는 마을에 "이스마일"이라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집은 정육점을 하는데 이스마일이 태어난지 일년반쯤 되던 어느날 저녁에 아버지와 침대에 누워 있다가 문득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집에 갈테야" "이 집에는 그만 살겠어요." "이스마일아,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가 네집이지. 또 다른 네집이 어디있어?"
"아니야, 여기는 우리집이 아니야. 우리집은 저 건너 동네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어, 내 이름도 "이스마엘"이 아니고 "아비스스루무스"야. 아비스스루무스라고 부르세요." 그것이 본 이름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 건너 동네 과수원집 주인인데 쉰살(50세)에 죽었어, 처음에 결혼한 여자는 아이를 못 낳아서 이혼하고 새로 장가를 갔어, 그리고는 아이 넷을 낳고 잘 살았지, 그러다가 과수원에서 일하는 인부들과 싸움을 벌려서 머리를 맞아 죽었어, 마굿간에서 그랬지, 그때 비명소리를 듣고 부인과 얘들이 뛰어나오다가 그들도 맞아죽었어, 한꺼번에 네 사람이 죽었지. 그 뒤에 내가 이집에 와서 태어난 거야. 아이들 둘이 지금도 그 집에 있을텐데 그 애들이 보고 싶어서 안되겠어."
그리고는 자꾸만 전생의 자기 집으로 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못하게 하면 울고, 그러다가 또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한번은 크고 좋은 수박을 사왔는데, 이 어린 아이가 가더니 가장 큰 조각을 쥐고는 아무도 못먹게 하는 것이다.
"내 딸 구루사이에게 갖다줄 테야! 그 애는 수박을 좋아하거든"
그가 말하는 전생에 살던 집은 별로 멀리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그 지방사람이 더러 이 동네에 오는 경우가 있었다. 한번은 웬 아이스크림 장수를 보더니 그 어린 아이는 뛰어 나가서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
알 턱이 있겠는가
"나를 몰라? 내가 아비스스루무스야. 네가 전에는 우리 과수원에 과일도 갖다팔고 채소도 갖다 팔았는데 언제부터 아이스크림 장사를 했지? 내가 또 네 할례도 해주지 않았더냐?"
놀랍게도 그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과 일치 하였다. 그리하여 이 소문이 자꾸자꾸 퍼져나가게 되었다. 터어키는 회교국이기 때문에 회교 교리에 따라 윤희를 부인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만약 환생을 주장하면 결국 그 고장에서 살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비스스루무스가 전생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자꾸 아이의 입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막을 도리가 없었다.
아이가 세살이 되던 해였다. 확인도 해볼 겸 아이를 그가 말하는 과수원으로 데리고 갔다. 가는 도중에 함께 가는 사람이 다른 길로 가려고 하면 아이는 "아니냐, 이쪽 길로 가야해" 하면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장서서 과수원으로 조금도 서슴지 않고 찾아들어가는 것이었다. 과수원에는 마침 이혼한 전생의 마누라가 앉아 있다가 웬 어린 아이와 그 뒤를 따라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눈이 둥그렇게 되어 쳐다 보았다. 어린아이는 전생 마누라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가더니 다리를 안으며 말했다.
"너 고생한다."
어린 아이가 중년부인을 보고 "너 고생한?quot;고 하니, 부인은 더욱 당황했다.
"놀라지 말아라. 나는 너의 전 남편인 아비스스루무스이다. 저 건너 동네에서 다시 태어나 지금 이렇게 찾아왔어"
또 아이들올 보더니,
"사귀, 구루사리, 참 보고싶었다. "
하면서 마치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하는 것이다.
또 사람들을 자기가 맞아 죽은 마구간으로 데리고 갔다. 전에는 좋은 갈색 말이 한 필 있었는데 그 말이 안 보이니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서, 팔았다고 하니 무척 안타까와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하던 여러 인부들을 보지도 않고서 누구, 누구하며 한사람씩 이름을 대면서 나이는 몇 살이고 어느 동네에 산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모두 맞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전생의 과수원 주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결국 세계적인 화제거리가 되어 이스마일이 여섯 살이 되던 1962년에 학자들이 전문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조사단을 조직하였다. 이때 일본에서도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했다. 그 조사 보고서에 보면 확실하고 의심할수 없는 전생기억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그 과수원 주인이 생전에 돈을 빌려 준 것이 있었는데 돈을 빌려간 사람은 아비스스루무스가 죽어버리자 그 돈을 갚지 않았다. 이스마일은 그 돈을 빌려간 사람을 불렀다
   전생 빚을 받은 아이
"네가 어느 날 돈 얼마를 빌려가지 않았느냐. 내가 죽었어도 내 가족들에게 갚아야할 것이 아니냐, 그런데 왜 돈을 떼어 먹고 여태 갚지 않았어?"
돈 빌려 간 날짜도 틀림없고 액수도 틀림없었다.
안 갚을 수 있겠는가!
이리하여 전생 빚을 받아내었다. 이 사실은 죽은 아비스스루무스와 돈빌려 쓴 사람,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그런 것을 어린 아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 것이며 또 누가 말하여 주었겠는가? 그리하여 조사단은 이스마일이 바로 아비스스루무스의 환생이라는 사실에 대해 확정을 짓는 보고서를 내었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례 중에서 또 유명한 것으로 인도의 산티데비Santi Devi의 이야기가 있다.
산티데비는 l926년 인도의 델리에서 태어났는데 세살때부터 자꾸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자기는 전생에 무트라Mnttra 지방에 사는 케다르Kedar 라는 사람의 아내였는데 자기를 그곳으로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산티데비는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러가지 전생 이야기를 하였다. 산티데비의 부모는 처음에는 아이가 정신이 좀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다. 그러나 전생 이야기를 너무나 생생하게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무슨 곡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날 아이가 말하는 무트라 지방에 가서 케다르라는 사람을 찾아 보았더니 과연 그런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아이가 말한대로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산티덴비의 부모는 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였다. 자기 집에 일곱살 되는 계집아이가 있는데 자꾸 전생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의 아내였다고 하니 그것이 정말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날 몇시에 자기 집으로 와서 확인해 보자고 제의했다.
산티데비의 부모는 이렇게 비밀리에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약속을 한 그날에 케다르는 산티데비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가 문에 들어서자 이를 본 산티데비는 깜짝 놀라며 반색을 하고 뛰어나가 그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당신을 항상 생각하며 당신에게 가려고해도 이집에서 보내주지 않아서 못 갔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전생의 남편인 케다르를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산티데비는 옆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계속하던 중에 자기가 죽으면 재혼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왜 장가를 갔느냐고 다그치기도 하였다. 또 자기 어머니에게 케르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면서 그것을 준비해 달라고도 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에 대해 상세히 말을 하자 케다르씨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비록 어린 아이지만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 등을 볼때 전생의 자기 아내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산티데비의 전생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자 인도 정부에서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단을 조직했다.
조사단은 산티데비를 데리고 무트라마을에 가서 조사를 시작했다. 우선 집을 찾도록 했다. 산티데비는 너무나 오랫동안 산 곳이라 눈을 감고도 척척 찾는 것이었다. 얼마쯤 가면 느티나무가 있는데 거기서부터 길이 좁아지니 거기서 차를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윽고 산티데비는 앞장서서 옛날에 차기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서 머리가 허연 노인에게 "아버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노인은 천생의 시아버님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불러서 한 사람씩 이름을 말하는데 모두 사실과 다름이 없었다.
산티데비는 살림을 돌아보고 나서 살림이 궁색해졌다고 하며 지하실에 묻어둔 금을 파서 살림에 보태 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데리고 지하실로 가서 가리킨 곳을 파 보았으나 빈 궤짝만 나오고 금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편이 그 금을 파 내어 썼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이야기로 전생에 산티데비가 지하실에 금을 묻어둔 것은 사실임이 판명되었다.
그래도 조사단은 계속해서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델리와 무트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말이 서로 달랐다. 산티데비는 렐리에서만 살았고, 아직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무트라 지방의 말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무트라 지방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평범한 어린아이라면 무트라라는 지방이 있다는 것도 잘 모를 텐데 억양도 말씨도 틀림없는 그 지방의 말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조사단은 더 이상 의심을 할수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 외에도 여러가지를 검증해 본 결과 조사단은 산티데비가 전생의 케다르씨의 아내가 환생한 것임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인도 정부에 다음과 같은 공식 성명서를 냈다.
"산티데비의 환생 문제는, 더러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으나 전국적으로 권위있는 사람들이 직접 상세히 조사해 본 결과 이것이 조금도 거짓말이 아닌 틀림없는 사실임을 확인 되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려져 전생기억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그후 산티데비는 인도의 수도인 뉴렐리에서 공무원으로 살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나이가 많아 생존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앞에서 이야기한 이스마일이나 산티데비의 예와 같은 전생 기억의 사례는 학계에 보고된 것만 해도 무수히 많다. 그 중에 한두 가지만 더 이야기 하겠다.
몇 해 전 스리랑카에서의 일이다. 태어난지 3년 7개월 된 쌍등이가 있는데 자꾸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사단이 이 아이를 전생에 살았다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근처의 주민들을 수 백명 모으고 그 가운데에 그 아이가 말하는 전생의 부모형제들을 섞어 두었다. 그리고는 그 아이더러 전생의 부모와 형제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이는 "이 사람은 아버지, 이 사람은 어머니, 이 사람은 누나, 이 사람은 형님…" 하면서 가족 한사람 한 사람을 다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 아이의 전생기억을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세살 된 어느 아이도 전생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다이빙 선수였다고 자랑했다. 그래서 물었다.
"지금도 다이빙을 할 수 있겠니?"
"그럼요, 할 수 있고 말고요, 전에 많이 했는데요"
이리하여 세살 되는 어린 아이를 높은 다이빙대 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그러자 어린 아이는 다이빙을 하는 것이었다.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조금도 서툴지 않게 서슴없이 다이빙을 했다.
전생기억이란 이런 식이다. 또 흔히 천재니, 신동이니, 생이지지(生而知之)니 하는 아이들이 있다. 태어난 뒤로 한번도 글을 배운 적이 없는데 글자를 다 아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책을 보여도 모두 읽을 줄 아는 것이다. 이런 것을 생이지지라고 한다.
곧 나면서부터 다 알고있다는 뜻이다. 이 생이지지는 바로 전생기억에 의한 것이다. 전생에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금생으로 그대로 가지고 넘어온 것이다. 또 처음 가보는 곳인데 낯이 설지않고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친근감이 가는 경우는 전생의 기억이 희미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생기억에 대해 누구보다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미국의 버지니아 대학의 "이안 스티븐슨" (Ian Stevenson) 교수이다. 그는 세계 각국에 연락기구를 조직하여 전생기억을 가진 아이나 어른이 있으면 학자들을 보내어 사실을 조사하여 확인했다. 이리하여 그는 수년 동안에 600여명의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그 중 대표적인 사례를 뽑아서 책으로 출판하였다. 바로 「윤희를 나타내는 스무 가지 사례Twenty Cases Sugge-stive of Reincarnation」라는 책으로 소개된다.
전생기억에 대한 보고서로는 가장 확신이 있고 어떤 사람이든 반대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유명한 책이다. 그리고 1973년까지 약 2,000건의 전생 기억을 가진 사례를 조사하여 보고했다.
자료가 이만큼이나 되는 것을 비추어 볼 때 사람이 죽으면 그 만이 아니고 윤회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안 스티븐슨"은 정신과 교수로서 전통적인 의학에 대한 연구 경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전통적인 이론은 인간의 성격을 유전과 환경과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이들 복합적인 요인만으로는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는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규명해 보고자 했다."
그는 윤회를 한다고 정식으로 공포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지식이나 경험에 의해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는 어른들보다 자신의 기억을 해석하려고 들지않는 어린이의 사례 조사에서 90퍼센트 이상의 정확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안 스티븐슨"교수는 전생기억에 나타난 사례들에서 몇가지 특징을 말하고 있다.
첫째는 전생기억과 연령과의 관계다. 대개는 태어난지 두서너살이 되면 전생을 밀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좀더 나이가 들어서나 아니면 말을 시작하자 마자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말을 잘 할 수 없는 시기의 전생기억이 좀더 정확한 수가 많다. 어린아이가 전생에 대해 말하는 첫 말은 대개 자신이 알았던 사람의 이름이나 지명이다. 그러다가 다섯살에서 여덟살 사이쯤 되면 어린이들은 전생기억을 잊어버린다. 왜냐하면 이 때가 되면 가정의 제한된 테두리를 벗어나 이웃과 학교에서 여러가지를 경험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점점 사라지는 전생기억 위에 새로운 경험이 축적되면서 전생기억은 아주 사라지는 것이다.
둘째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이거나 위엄과 지혜를 갖는 등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그 행동이 다르다. 이러한 행동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이지만, 본인에게는 당연한 행동이며 그것은 전생의 자기모습과 일치하는 것이다. 또 증언자들이 말하는 죽은 사람의 행동과도 일치한다.
세째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자기 육체의 생소함을 말하곤 한다. 그들은 대개 자신의 작은 육체에 갇혀서 답답하다고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네째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가장 생생하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전생에서 죽음과 관련된 것이며, 바로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억이다. 그리고 특히 죽음에 대한 전생기억 중에서 교통사고나 살인, 전쟁과 같이 격렬하게 죽은 기억이 더욱 생생하다고 한다. 이것은 그런 죽음을 당한 사람만이 환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런 경우일수록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아 있다는 말이다.
격렬한 죽음의 경우, 전생기억을 하는 아이는 대개 죽음을 가져다 준 물건이나 환경에 대해 강한 공포심을 나타낸다. 한 보기로서 어떤 어린이는 전생에 다리 위에서 버스를 지나가게 하느라고 비켜 서다가 물에 빠져 익사하였다고 기억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다리, 버스, 물에 대해서 상당한 두려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를 목욕시키려면 네 명의 어른이 강제로 붙잡아야 할 정도로 물에 대한 공포에 떤다고 한다.
다섯째로, 사람과 환경의 변화를 안다는 것이다. 만일에 처음 가는 집이라면 그 집이 어떻게 변하였고, 거기 사는 사람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보통의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에는, 처음 전생 집을 찾아갈 때, 구조가 어떻게 변경되었다는 등 가족 중에 누가 안 보인다는 등 집의 그 변화를 말한다고 한다.
여섯째로, 환생을 예견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어느 가정에 태어나기 위해 온다는 것을 꿈에 예고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꿈이 동 ·서양에서 종종 화재가 되곤 한다.
일곱째로, 임신 중의 비정상적인 식성을 들 수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에는 임신을 하게 되면 평소에 잘 안 먹던 음식이나 제 철이 아닌 음식에 대해 그 사람은 비상한 식욕을 느낀다. 그것은 임산부의 변덕이라고 하여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전생기억을 하는 어린아이의 경우, 전생에 좋아했던 음식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그 음식이 바로 어머니가 임신 중에 먹고 싶어했던 음식과 일치한다고 한다.
여덟째로, 배우지 않은 기술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전생기억을 하는 어린이 중에는 배우지도 않은 기술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전생에 가졌던 기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보기를 하나 들자면 "벨기에"에 "로버트"라는 소년이 있었는데 이 소년은 어느 날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5년에 죽은 자기 삼촌인 "알버트"의 초상화를 보더니 그것이 자기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세살이 조금지나서 로버트는 부모와 같이 처음으로 수영장에 갔는데 멋진 동작으로 다이빙을 하여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알고 보니 그의 삼촌인 알버트는 훌륭한 수영선수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수영은 세살정도의 어린아이도 할 수 있지만 다이빙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수영장에 처음 온 아이가 다이빙을 멋지게 해내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아이가 전생의 알버트였음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배우지도 많은 기술이 나타나는 가장 놀라운 사례는 외국어를 말하는 경우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생리학자이며 심리학자인 동시에 노벨수상자이기도 한 "샤를르 리히"「Charles Richet」는 그러한 현상을 "지노글로시"「Xenog lossy」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안 스티븐슨"은 이 "지노글로시"에는 두 가지 형태가 알려져 있다고 한다.
첫째는 독백과 같은 것인데 당사자는 이상한 언어의 조각들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자꾸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잠재된 기억 속에서 언어가 무의식적으로 도출되는 경우인데 본인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두번째는 반응적인 경우인데, 이것은 직접 상대방과 그 외국어로써 대화를 할 수 있다. 스티븐슨은 두번째 경우인 반응적인 "지노글로시"의 사례는 죽음 이후의 인간의 윤회에 대해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한다.
6. 윤회는 제8아라야식이라 한다. 자업자득이 유전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간 영혼의 실체를 찾아 그 존재여부를 확인코자 지루한 연재를 계속해 왔다. 상주법계의 불생불멸의 윤리에 이어 인간이 살아서는 정신, 죽어서는 영혼이라 하는데 불교에서는 제 8아라야식이라 한다고 하였으며, 이 아라야식의 유전이 곧 윤회라는 것이다.
이 제8아라야식은 미래겁 (앞으로의 끝없는 시간) 이 다 하도록 윤회를 하는 동시에 무엇이든 한번 스쳐간 것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어떤 기회만 주어지면 본지풍광이 나타나서 업보를 따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과를 절대로 떠날 수 없으며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진리를 순종할 뿐임을 알아야 할것이다.
또한 죽었다가 살아나는 예와, 영혼을 영상화한 사진하며, 영혼의 물질화 즉 혼영사람이 존재한 예, 그리고 죽은자의 서신 등을 열거했고, 전생을 기억하는 실제 실증을 통한 윤회의 확인이었으며, 죽을 시한이 남아서 죽었다가 다른 몸을 바꾸어 살아나서 자기모습이 아닌 다른 몸을 갖고 사는 경우도 있으며, 죽음 이전의 죽음에 의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한 생뿐(한삶)만 아니라 이생, 삼생까지 올라가 전생회기 (前生回歸)에 의한 윤회의 확인 등을 들 수 있다.
이로써 우리들은 영혼은 존재한다. 그리고 윤희한다. 반드시 인과는 역연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부처님 정법을 바로 믿고 부지런히 잘 닦아 성불의 인을 바로 심어야 할 것이다.

또 전생에 그 언어를 배웠거나 사용한 사람이 아니면 그처럼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이 언어를 배우지도 못한 어린이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 가운데 최초의 "지노글로시"는 l9세기에 있었던 일인데 최면에 의해서 이다,
1862년 독일의 왕자 "갈리첸"은 어떤 여인을 대상으로 최면 실험을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인은 18세기의 훌륭한 프랑스어로 샤브리타니에 살았던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갈리첸 왕자는 그녀가 프랑스어를 배웠는지 조사해 보았지만 그녀는 일반교육도 전해 받은 적이 없는 무학(無學)이었다. 다만 자기 지방의 독일어 방언밖에는 말할 줄 모른다는 것이 판명되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이 여자는 전생에 프랑스에서 살다가 다시 독일에 태어난 윤회의 실증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홉번째로 출생자국을 들 수 있다. 아이가 출생할때부터 흉터가 있거나 불구가 되는 수가 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선천적 기행이라고 말한다. 그 원인은 대부분 유전이나 임신중의 약물복용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것이 전생의 업보에 의해 생길 수도 있다.
윤희를 입증하는 전생기억에 관한 사례는 현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다.
신라통일시대의 김대성의 이야기다. 김대성이 처음 태어난 집은 아주 가난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품을 팔아 근근이 먹고 살았다. 그러다가 주인 집에서 밭을 조금 떼어 주어서 그것으로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하루는 옆집에서 시주를 하자 스님께서 "시일득만배(施一得萬倍)라고 축원하는 것을 김대성이 들었다. 김대성은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간청하여 자기네의 조그만 밥을 스님에게 시주하였다. 스님께서는 역시 "시일득만배"라고 축원을 하였다.
그후 얼마 안되어 김대성은 죽었다. 그날밤 대신 김문량(金文亮)의 꿈에 "모량리의 대성이가 너의 집에 태어난다"고 하는 소리가 허공에서 들렸다. 그래서 모량리에 가서 알아보니 과연 착한 대성이가 죽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김문량의 부인은 그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날 때 손을 꽉 쥐고 있다가 이레만에 손올 폈는데 손바닥을 보니 "大成" 이라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김문량의 집에서는 이 아이가 모량리의 김대성이 다시 환생한 것이 분명하다고 하여 이름을 그대로 대성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생의 어머니를 모셔다 함께 있게 하였다.
김대성은 성장하면서 사냥을 좋아했다. 하루는 토함산에 가서 곰한마리를 사냥해 오다가 산아래 마을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의 꿈에 그날 잡은 곰의 혼이 나타나 자기를 죽였으니 그냥두지 않겠다고 하며 달려드는 것이다. 김대성이 너무 무서워 잘못 했다고 빌었더니 곰의 혼은 자기를 위해 철을 지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김대성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잠에서 깨어보니 그것은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그 뒤로 김대성은 사냥을 끊고 꿈에 약속한대로 그 곰을 잡은 자리에다 "장수사(長壽寺)"라는 절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원을 세워 현세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짓고 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지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윤회를 입증하는 전생기억이나 과거에 습관들인 일들을 예를 들어 말씀 드렸으므로 더이상 윤회를 의심할 사람은 없을 줄로 믿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