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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고 가라! 길은 이미 열려있다”
글쓴이 : 삼보사 날짜 : 10-06-03 15:51 조회 : 2470


[천강에서 달을 보다] 육지장사 회주 지원 스님

“두려워 말고 가라! 길은 이미 열려있다”

10·27법난 접한 후 새 원력
인재양성-실천불교에 매진
차돌로
굳어진 情
오늘에야 門 엽니다.

피맺힌
가시줄기
맨발로 밟아 올라

머금은
아침 햇살에
송이로나 앉읍니다.
(윤지원 시집 『장명등』 중 ‘장미’ 전문. 1983년 판.)

한 송이의 꽃을 보고 느끼는 시인의 감성은 남다르다. 하물며 수행과 전법을 펼치는 스님의 마음과 시인의 마음이 교차된 순간에서 본 한 송이의 장미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 생명의 탄생 속에서 ‘환희’는 쉽게 공감할 수 있지만 그 사이에 견뎌야 했을 씨앗의 아픔과 꽃으로 피어나기까지의 시련을 통찰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지운 스님의 눈에 비친 장미는 가시를 온 몸으로 훑고 지나서야 꽃을 피우는 존재로 다가왔다. 음미해 볼수록 존재의 사유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시 한 편이다.
지원 스님을 만나기 위해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삼보사를 찾았다. 종무소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니 원터치로 열리는 자동 유리문이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방 안 가득 다상이 놓여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다실이었다. 자동 유리문에 다실이라! 누구든 이곳에 들어 와 차 한자 해 보라는 열린 공간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지원 스님은 등단과 함께 역사적인 사건 하나와 직면하고 만다. 바로 군부독재 시대 때 일어났던 10·27법난이다. 충격이었다. 이 때 지원 스님은 ‘왜 우리는 법난을 자행한 군부독재에 맞서지 못하는가’에 대한 깊은 의문을 가졌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인재를 키우지 않았다는 것,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포교’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삼보사 창건 후 포교 새 지평
육지장사 통해 대중과 호흡
‘큰 서원의 갑옷을 두르고 대승의 정법을 실천하는 보살이 되자. 보살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우리가 보살이 되자!’ 1983년 10월 지금의 역촌동 삼보사 동북방향에 15평의 2층 사무실을 임대하며 전법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우선 어린이와 청소년 포교에 나섰다. ‘은평포교원’이라는 작은 포교당이었지만 낮과 주말에는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저녁에는 독서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이 부모를 모시고 포교당을 찾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된 것이다.

1991년 400평 규모의 ‘삼보사’를 준공했다. 100명의 선지식을 초청한 ‘법화경 백고좌 법회’와 ‘지장경 49일 고승대법회’를 열어 불자들에게 감로법문을 전했다. 지원 스님이 창단한 삼보합창단의 역할 또한 포교의 큰 중심을 차지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타이틀을 내걸은 삼보합창단은 전국투어에 나섰다. 아마추어 합창단이 소화하기에는 무모해 보인 이 투어는 대성황을 이뤘고, 마지막 음악회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졌다.

삼보사의 틀을 확고히 잡은 지원 스님은 경기도 양주 도리산에 육지장 6만불을 모신 육지장사를 창건하기에 이른다. 철야용맹정진과 3000배, 참선과 염불수행을 프로그램화 한 ‘수행전법’과 어린이 수련회를 비롯한 템플스테이 등의 ‘수련체험’은 물론 산사음악회와 락 콘서트, 사진 전시회 등의 ‘대중문화’도 산사에서 펼쳤다. 짧은 역사 속에서도 대 도량으로서의 위용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도량으로 가꾸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과 함께 가꾸어가는 ‘열린 산사’ 속에 깃든 지원 스님의 철학과 원력이 있을 터였다.

“열림은 곧 소통이요, 자재(自在)입니다.”
열림이 소통임은 알겠으나 열림과 자재의 관계는 묘연하기만 하다.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고 하지 않습니까? 학은 학으로서 존재하고 오리는 오리로서 존재할 때 비로소 조화를 이룹니다. 오리가 학의 다리를 가지려 하는 순간 그 조화는 깨지고 말지요. 스스로 자족할 때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알아야 자족할 줄도 압니다. 그러나 사바세계에서 그 조화가 이루어지려면 소통이 원활해야 합니다. 소통하는 순간 조화는 시작되고, 그 조화가 완성되는 순간 모두가 자유자재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지요.”

지금 스님과 마주하고 있는 이 자리는 다실의 한켠이다. 이 다실은 두 가지 용도로 쓰인다. 지원 스님을 찾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 즉 ‘접견실’이 그 하나요, 불자들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지대방’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사랑방’이다. 불자든, 일반인이든 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이 다실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때로는 지역주민들의 소규모 회의도 열린다고 한다. 누구든지 저 자동 유리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놓여있는 다기에 차를 넣고 우려 마시며 담소를 나누면 되는 것이다. 혹여 혼자라면 차와 함께 잠시나마 자신만의 사유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이 다실을 모두에게 개방하는 순간 지원 스님과 대중, 삼보사와 시민의 소통은 시작된 것이다. 지대방과 사랑방의 담소 속에 이미 조화와 무애가 살아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차리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부처님만 계시는 산사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스님만 있는 산사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대중이 외면한 산사는 이미 산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겁니다. 부처님과 스님, 불자가 함께 있을 때 산사는 산사로서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겁니다.”


삼보사 다실전경. 불자들에게는 지대방이요, 주민들에게는 사랑방이다.

지원 스님이 말하는 소통과 조화 그리고 자재 의미가 다가왔다. 어느 산사든 부처님과 스님 그리고 불자들은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사이에서의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되짚어 볼 일이다. 산사는 불자들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지, 또한 불교는 사회에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혹여 산사나 불교는 불자로부터, 사회로부터 받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수행 통해 얻은 것 있다면
그만큼 바라밀 실천해야
삼보사는 사찰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다. 재정 부분만큼은 재정위원회가 또한 따로 있다. 법회 봉행 하나도, 사찰순례 하나까지도 공의를 거쳐 진행된다고 한다. 위원회를 두었다는 것은 ‘공개’를 의미하며, 그 공개 속에는 소통이 존재한다. 소통은 곧 새로운 힘을 축적시켜 원력을 실현시킨다. 은평포교원이 삼보사가 되고, 삼보사를 넘어 육지장사까지 우뚝 서게 한 힘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지원 스님이 지금까지 일궈 낸 불사와 포교는 실로 크다. 분명 지원 스님만이 간직하고 있는 심지가 하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한마디를 들려달라고 청해 보았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가면, 그 길은 열려있다.’ 원력을 세웠다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떠나기도 전에 어떤 난관에 봉착할 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포교든 수행이든 대 원력을 세웠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묵묵히 가야 합니다.”
충만한 자신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감 또한 스스로 터득한 법의 이치가 세워지지 않고는 샘솟기 어렵다. 지원 스님이 전하고 싶은 법의 이치는 무엇일까!

“12연기 즉 인연법입니다. 만물은 인연으로 인해 생겨난 일시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그 인연이 다하면 다시 무(無)로 돌아가지만 또 다시 인연을 만나면 생(生)합니다. 만물 속에 깃든 인연법을 안다면 자연스럽게 공(空)의 세계도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나 자신도 인연법에 의해 존재하고 있음을 직시하는 겁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위고가 말했지요? ‘인간은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와 같다. 다만 집행유예일 뿐이다’라고. 오늘도 소중한 하루입니다. 하루하루를 영원의 하루로 살아간다면 후회할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연법 알면 하루도 소중
신심 확고하면 원융자재
지원 스님은 한 방울의 물이나 한 장의 종이라도 그 쓰기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이 우주만물 중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은 것이란 없다고 강조했다.
“아무 소용없는 먼지라 하지만 그것이 저녁 무렵 석양에 곱게 물드는 노을로 핍니다.”
지원 스님의 인연법은 궁극의 깨달음에만 가 있지 않다. 깨달아야 인연법을 아는 게 아니라 인연법을 알고 실천해 가다보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인 듯하다. 불교란 깨달음의 종교인만큼 ‘깨달음’에 대한 소신을 여쭈어 보았다.
“하루를 수행 했으면 하루 동안 얻은 만큼의 실천행을 보여야 합니다. 석 달 수행을 했으면 석 달 동안 얻은 만큼의 실천행을 보여야 합니다.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저 깊은 우물 속에서 한껏 건져 올린 물처럼 시원하다.
지원 스님의 시 ‘장미’가 다시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이 시는 스님의 지나온 길을 시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맨발로 가시를 밟고 가는 듯한 수행의 진통을 겪고 난 후 얻은 그 무엇을 장미 한 송이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무엇이 ‘작은 깨달음’이든 ‘궁극의 깨달음’이든 말이다. 부처님께서 전도선언을 한 후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떠나신 것처럼, 지원 스님 또한 일말의 수행을 한 후 전법을 위해 길을 떠난 것이다. 아니, 지금도 수행하며 어디론가 또 떠나고 있다. ‘부처님처럼 살아가야 한다’며 말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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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스님은
1964년 서울 백담사 입산. 범어사 불교강원 졸업.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시집 『장명등』과 서간문집 『마음이 열리면 천당도 보이지요』가 있다. 논문으로는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 해결중심 모델 적용에 관한 연구-선불교적 접근방식을 중심으로(석사)’가 있다.


1031호 [2010년 01월 11일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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